전주 견씨 시조, 항렬표, 조상, 본관, 파, 종파, 돌림자, 족보

전주 견씨(全州 甄氏) 한눈에 보기
성(姓): 견(甄)
본관(本貫): 전주(全州) (오늘날 전북 전주시)
시조(始祖): 견훤(甄萱) — 후백제(後百濟) 건국자
중심 계통 인물(1세조로 세우는 경우): 견윤(甄胤)
시조 견훤(甄萱)은 어떤 인물인가
1) 출생과 가계로 알려진 내용
견훤은 상주 가은현(오늘날 경북 문경 일대) 사람으로 전해집니다.
아버지 아자개(阿慈介)는 처음에는 농사로 살다가 세력을 일으켜 장군이 된 인물로 설명됩니다.
2) “원래 성이 이씨였다”는 기록
견훤은 본래 성이 이(李)였는데, 뒤에 견(甄)으로 씨(氏)를 삼았다는 서술이 전합니다.
(다만 ‘왜/어떻게’ 바뀌었는지의 세부 사정은 자료에 따라 해석이 갈리기도 합니다.
3) 후백제 건국과 전주(완산주)와의 연결
견훤은 892년 무진주(광주)에서 자립, 이후 세력을 확대합니다.
900년 완산주(오늘날 전주)로 도읍을 옮기며 국가 운영 체제를 정비하고, 후삼국의 한 축이 됩니다.
후백제는 내분 끝에 936년 멸망합니다.
4) 말년: 실각과 고려 귀부
견훤은 아들 신검에게 쫓겨났다가 고려로 귀부한 것으로 정리됩니다.
왜 “전주”가 본관이 되었나
후백제가 완산주(전주)를 도읍으로 삼아 국가 중심을 세웠다는 역사적 연결고리 때문에, 후대에 본관을 전주로 정리하는 흐름이 자연스럽게 형성됩니다.
견윤(甄胤)이 크게 등장하는 이유
전주 견씨를 설명할 때 “시조는 견훤”으로 두면서도, 계통을 말할 때는 견윤(甄胤)을 1세조로 삼는다는 정리가 함께 나옵니다.
후백제 멸망 이후, 견씨 일족의 세계가 흩어져 견훤 이후의 계통을 촘촘히 잇기 어려웠다는 설명이 전해지고,
그 결과 세계(世系)를 비교적 확인할 수 있는 견윤을 1세조로 세운다는 식으로 정리됩니다.
같은 ‘견(甄)’ 성씨의 다른 본관(분적 전승)
견씨는 전승 정리에서 다음과 같은 본관들로 갈라졌다고도 소개됩니다.
전주(全州), 황간(黃澗), 남양(南陽), 경주(慶州), 청양(靑陽), 남원(南原), 선산(善山)
인구(2015년 기준으로 널리 인용되는 수치)
견(甄) 성씨 전체: 1,251명
전주 견씨: 908명
이름 표기에서 자주 헷갈리는 포인트
“견훤”의 한자는 甄萱으로 적고, 현대 한국어 표기에서는 보통 ‘견훤’으로 씁니다.
다만 자료에 따라 甄의 음가(독음)를 두고 다른 견해가 언급되기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