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 황씨 시조, 항렬표, 조상, 본관, 파, 종파, 돌림자, 족보

장수 황씨(長水 黃氏) 정리 한눈에 보기
성(姓): 황(黃)
본관(本貫): 장수(長水) —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시조(始祖): 황경(黃瓊)
중시조/기세조로 함께 언급: 황석부(黃石富)
인구(2015년): 170,988명
시조 황경(黃瓊) 전승의 핵심
장수 황씨의 시조로 전해지는 황경(黃瓊)은 신라 말에 시중(侍中)에 이르렀다고 소개됩니다. 또한 배우자는 경주 김씨로, 경순왕(敬順王)의 딸로 적는 정리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계통이 끊겨 “중시조/기세조”가 세워진 배경
장수 황씨는 중간 계대가 완전하게 이어지지 않는 구간이 있다고 전해집니다. 그 때문에 황석부(黃石富)를 기준으로 세계(世系)를 다시 정리해 이어오며, 황석부는 조선의 대표 재상 황희(黃喜)의 증조부로 소개됩니다.
본관 ‘장수(長水)’가 굳어진 흐름
전승에서 자주 언급되는 인물은 9세손 황공유(黃公有)입니다.
고려 명종 때 전중감(殿中監)을 지냈다고 하며
무신 이의방 관련 난을 피하여 장수로 돌아왔다가, 이후 남원으로 옮겨 세거했다고 전해집니다.
남원에서의 옛 집터로 광한루를 언급하는 서술도 함께 알려져 있습니다.
이 흐름을 근거로, 고려 시기부터 장수(長水)를 관향으로 삼았을 가능성을 설명하는 정리도 있습니다.
장수 황씨를 대표하는 인물: 황희(黃喜)
장수 황씨를 이야기할 때 가장 널리 알려진 인물은 황희(1363~1452)입니다.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우의정·좌의정·영의정부사(영의정격) 등을 지냈고
세종 대 국정 운영을 이끈 대표 재상으로 평가됩니다.
또한 전승 정리에서는 황희의 장남 황치신(추증 우의정), 셋째 아들 황수신(영의정 역임)이 함께 중요한 인물로 언급됩니다.
분파(파계)로 정리되는 큰 갈래
황희의 아들 4형제를 기준으로 4파로 나뉜다고 정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호안공파(황치신 계열)
소윤공파(황보신 계열)
열성공파(황수신 계열)
사직공파(황직신 계열)
집성촌(자주 함께 거론되는 지역)
집성촌/세거지로는 전북권(남원·무주·완주 등)과 경기권(파주 등)이 함께 언급되는 편입니다.
인구(통계로 많이 인용되는 흐름)
1985년: 126,746명
2000년: 146,575명
2015년: 170,988명



















